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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칼럼

[칼럼] 예술과 문화 - ④ 지식인, 대중의 취향 그리고 문화

Photo by Beata Ratuszniak(Photo by Beata Ratuszniak)


지식인이라는 표현은 과거에서도 많이 쓰였현대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지식인은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네이버 포털의 지식인 서비스가 수년 동안 유지되면서 인터넷을 쉽게 접한 세대들은 지식인의 뜻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학에서 정의하는 지식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 지식인은 어떠한 사람을 말하며 문화에서 지식인의 위치가 왜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지식인의 정의

지식인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입니다. 간단명료해 보이지만 정확한 기준이 없으므로 누구를 지식인이라 칭할지는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 민족학에서 정의하는 지식인은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물론 지금 모든 학문에서 다루는 지식인에 대해서 공부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학문마다 정의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일괄되는 이미지는 비슷합니다.

"모든 사회에는 그 사회를 위하여 세계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것을 그 사회적 임무로 하는 사회 집단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Intelligentsia (지식인 사회계층) 이라고 부른다"  
-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년~1947년)

지식인계층들이 종사하는 직업은 학자, 예술가, 교사, 변호사, 기술자, 일반 사무직원, 의사, 저술가, 저널리스트 등 그 범위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이는 어느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만을 지식인이라 칭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문명 시대 이후 관습적인 생활지식의 범주를 넘어 학문의 원리나 이론 지식을 전담하는 신분층이 나타나고, 이들의 사회적 의무가 정립되었습니다. 지식인의 임무는 현 체제를 유지하거나 현 체제를 위해  봉사하는가 하면, 사회 변동기에는 변혁을 일으키는 임무를 담당해 왔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직업의 범주 즉, 사회적 생산에서 독자적이기에 특별한 계급을 이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임무와 봉사.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신념처럼 해내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기에 과거 지식인 대부분은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위에 열거한 것들이 지식인의 특징입니다. 다소 보수적이지만, 잘못된 것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며 인류의 안녕을 바라며 드러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 바로 지식인입니다. 지식인의 특징을 들으니 어떤가요? 자신은 지식인의 특징에 부합한다고 생각됩니까? 

취향의 정의


취향은 어떠한 성질을 선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음악 장르를 예로 들면 누군가는 트로트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힙합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은 트로트가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은 힙합이 불경 외우는 것처럼 노래 같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의 취향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특정 분야에 대해 미적인 감별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이냐면 "힙합/트로트는 내 취향이 아니야!" 라는 말은 곧 "힙합/트로트는 다 거기서 거기라 특별한 걸 모르겠어" 라는 말이 되고 이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미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에 열광하고 즐기고 있기 때문에 미적인 부분이 없다 할 수 없습니다. 트로트나 힙합 자체에 미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 미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취향은 상대적인 것이며, 존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취향이 사람마다 갈라지는 이유는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있고, 후천적으로 우리가 받은 교육과 자신이 자라온 국가의 문화와 사회적 환경, 자신이 자란 가정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중국집 사장님 자식들이 중국 음식을 즐겨 먹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문화 취향의 심리적인 요인으로 내성적이거나 조용한 사람은 반대의 성향인 격동적인 것에 열광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육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댄스 음악이나 격렬한 운동을 선호하고,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조용한 음악과 조깅, 명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하게 되는 인간의 본능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왕성한 시기를 거쳤던 사람도 노인이 되면 점점 조용한 음악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지식인의 특징과 취향의 특징을 이야기한 이유는 이제부터 이야기할 취향의 위계화, 문화의 위계화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취향의 위계화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순수 예술은 고상하고 우월하며 지식인들이 접하는 문화이고, 대중예술은 순수예술보다 저급하고 쉬운 것' 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다면 취향의 위계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 옳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좋아할 리 없겠지요) 그로 인해 취향에 세대 차이가 발생합니다. 힙합 문화를 광대처럼 보는 아버지 세대들이 좋아하는 포크, 민중가요 음악을 할아버지 세대들은 음악 같지 않은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취향의 흐름


랑스의 문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년 ~ 2002년 1월 23일)는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들이 다른 취향을 갖는다는 사실을 분석해낸 유명한 학자입니다.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 거쉰의 랩소디인 블루, 슈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강. 이 세곡을 가지고 16개 직군을 대상으로 선호도를 설문조사 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은 대학교수, 예술가가 선호하고, 거쉰의 랩소디인 블루는 프랑스 직업군 중 중간층에 해당하는 기술자, 사무계 관리직이 슈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강은 공장 종사자, 상인, 사무 노동자가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취향을 갖는다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위와 같은 설문조사로 취향의 구별 짓기 욕망을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고학력, 고소득자는 자신의 취향을 정당화하고 저학력 저소득자는 상류층의 취향을 닮고 싶어 한다고 정의합니다. 그로 인해 고학력, 고소득자의 문화가 서민 대중문화로 흘러가게 되며 상류층은 서민 대중문화가 아닌 또 다른 취향으로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이미 내가 다 즐겼던 문화고 난 이제 그것에 관심이 없어 왜냐면 난 너희와 다르니까" 라고 생각하며 다른 취향을 찾아 떠날 것이라는 겁니.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위에 열거한 세 개의 음악을 유튜브 검색을 통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위와 같은 결과에 대해서 수긍이 되던가요? 정말 바흐의 평균율은 푸른 도나우 강에 비해 높은 학력을 갖은 사람들이 좋아 할만한 음악이던가요? 클래식에 대한 미적 감별 능력이 없는 사람이 들었을 경우 그 음악이 그 음악처럼 들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감별능력이 있는 사람이 바흐의 평균율이 더 좋다고 하더라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너무 위축되지 말길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푸른 도나우 강은 상류층 사람들이 듣는 음악일 것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상대적으로 하층민이 선호하는 음악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프랑스보다 낮아서가 아닌 우리나라에 취향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저 상류층이 클래식을 선점하고 구분 짓기 한 것뿐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어릴적부터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클래식은 상류층이 즐기는 문화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클래식이 서민 대중문화화 된다면 아마 상류층은 다른 음악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대중의 취향

예술마다 특이하고 창의적인 면이 존재하긴 하나 저마다의 관습이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힙합은 힙합이기 위해 힙합에 내포되어있는 관습을 따릅니다. 강한 드럼, 빠른 음절의 랩, 사회 비판적이거나 자기 과시하는 가사 내용, 랩을 할 때 특유의 손짓이나 몸동작 말입니다. 또한 트로트는 트로트이기 위해 트로트의 관습을 따릅니다. 반짝이 의상, 음을 꺾는 발성법, 직관적인 가사, 여성의 간드러진 코러스 등등 말입니다. 추리 소설이나 로맨스, 액션, 공포 등등 모든 예술적 장르는 저마다 그 장르를 나눌 수 있는 특징과 같은 양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중의 취향은 예술이 지닌 양식이 아닌 대중 자신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프랑스 시민들이 같은 장르 안에서 서로 다른 음악을 선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술과 문화 칼럼을 마치며..


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음악을 하면서 가사에 깊은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은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블로그를 통해서 다수가 관심 없을, 혹은 문화를 연구하는 전문 학자들의 비웃음을 살 수도 있는 짧은 지식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창작자의 꿈은 열심히 창작만 하면서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고 창작만 하다 죽는 것일 겁니다. 뭐 혹자는 창작으로 큰돈을 벌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둘 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창작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같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창작자들이 사회에 대해서, 대중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면 그것 또한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지키고 싶으면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고 대중의 만족에만 의지해서 창작하는 것도 옳은 방향은 아니겠지만, 알면서 안 하는 것과 몰라서 못 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자료들을 모으고 생각하고 편집하면서 저 또한 배운 점이 많았기에 많은 창작자분이 제가 쓴 칼럼을 읽고 자기의 생각을 더 해서 더 높은 차원의 식견을 담은 글을 어디선가 보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앞으로도 제가 아는 지식 내에서 이러한 칼럼을 계속 연재할 예정인데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남긴 지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정말 보람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